나의 카지노 경험담. 다시는 헛된 꿈을 꾸지말자. 아무리 힘이 들더라도 아직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살자. 오늘도 이렇게 되뇌이며 하루를 시작한다.
88년 해외 여행자유화 이후 전보다 더 자주 나갈 수있던 해외 출장, 남의 것을 단 한번도 탐해본 적도 공돈도 바라본 적이 없던 내가 무슨 이유로 카지노에 발을 들여 놓았을까 하고 지금도 수없이 생각하고 후회해본다.
칠순이 훌쩍 넘어 온 머리카락이 희게 변하신 아버지가 그 먼 고한과 사북을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날 찾으러 오셨을 때, 난 왜 아버지를 피해 달아나야 했나.
하지만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 나에게 이제까지 내가 잃은 수억원의 돈, 2개의 회사, 수많은 친구들보다 더 소중한 가족이 남아있었기에 지금 다시 한번 내 인생의 걸음마를 시작하려고 한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길을 가지 못하게 하고픈 점도 있지만, 이 글을 읽고 단 한분만이라도 다시 삶의 희망을 얻어 매사에 감사하며 저와 같이 다시 살아갈 수 있길 바라며 쓴다.
1989년 봄 어느날 바이어와의 상담을 위해 도착한 마닐라 공항 항상 느끼는 거지만 보딩 트랩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가슴이 탁막혀온다. 4-5월 이지만 이때가 가장 더운 시즌인 이곳 바이어와 차를 기다리는 동안 철조망 너머의 수많은 초롱 초롱한 눈망울의소년 소녀들 "메리 크리스마스"하며 꽃다발 또는 빈손을 내민다. 먼가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데 40도에 가까운 더운 공기보다 날 더 답답하게 만드는데.
아무 생각없이 차에 올라타 EDSA거리 근처 의 샹그릴라 호텔로 향했다. 3박4일의 마지막 밤 바이어가 늘 하던것 처럼 저녁 식사나 하자고 초대를 했다. 그린힐스 근처의 중국집에서 식사를 하고 술한잔 하자고 한다. 상담도 잘되었겠다. 술한잔 마시고 푹자자 생각하고 따라 나선곳 로하스 거리의 룸살롱이다. 대충 즐겨 주는 척하다. 이번 출장 내내 지워지지 않는 어린 눈망울들이 생각나 혼자 먼저 가겠다고 나와 거리를 걸었다.
거리를 걷다 눈에 띠는 카지노 갑자기 어린 눈망울들은 사라지고 갑자기 중국배우 주윤발, 유덕화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구경이나 한번 해볼까. 담배 한대 물고 들어선 그곳은 이제껏 영화를 통해본 내 상상 속의 카지노 보단 너무도 화려해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 정신 없이 돌아가는 머쉰 소리, 떨어지는 코인 소리, 돈을 베팅하고 광기 어린 눈으로 테이블을 향해 소리지르는 이들.
아나운서의 멘트 처럼 장내는 흥분의 도가니 그 자체 이번엔 한층 더 올라가 보자 그런대로 좀 차려 입은 로칼인들이 아래층보다는 차분하게 게임을 한다. 그래도 가끔 터져 나오는 고함들 칩을 수도없이 싸놓고 음식시켜 놓고 먹으면서 하는플레이어도 보인다.
카지노를 한바퀴 돌다보니 한쪽면에 안이 안들여다 보이고 밖에 "VIP ONLY"라는 입간판이 보인다. 안에 들어서려 하니 왠 놈이 막아선다. 씩 한번 웃으며 바낏?(왜?)하고 로칼말을 하니 이넘 깜짝 놀라며 위 아래를 훝더니 길을터준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사람도 그리 많지 않고 분위기가 아까와는 또 다르다. 나오는 음식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게 술이 보인다. 엑스오급 술을 병째 가져다 마시는 배부른 차이니즈들이 눈에 확 들어온다. 옆 구석의 간이 테이불에 앉으니 짧은 치마의 웨이츄이스가 와서 멀 마시겠냐구 한다. 음 좀 당황스럽다. 이것 공짜로 준다는거야 아님 나중에 돈 받는건가. 대충 눈치보니 걍 주는듯하다. 헤네시 한잔과 가벼운 스낵을 가져달고 한후 테이블을 찬찬히 살펴 보았다.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빅테이블의 함성 소리 양 쪽으로 편 먹고 게임하는 줄 알었다. 가까이 다가서 보니 아니나 다를까. 한쪽은 차이니즈 한쪽은 로칼인이다.
상황을 보니 로칼인이 계속 윈한 모양새 차이니즈 아저씨 갑자기 카드를 찢어 버린다. 그 옆에 있던 사람 표정도 마찬가지다. 저쪽 편은 신난다고 건배하고 하이 파이브하고 난리다. 갑자기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처음보는 광경이다. 이게 뭔가? 왜 난리지? 먼 게임이지? 쪽팔리게 물어보기도 뭐하고 대충 눈치로 어느 정도 게임이 들어왔다. 로칼인 갑자기 칩을 교환한다 갑자기 둥그런 칩들이 판때기로 바뀐다. 어 저거 주성치가 대가리로 들이 미는거 아냐 혼잣말로 되뇌이며 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린다. 어 분위기가 이 사람 따라가면 대박이네.
이런 생각을 하는데 10번 승부에 8번은 먹는다. 2번 루스할 때도 배텡이 약할때만 죽는다. 음 한번해봐 말어 주머니에 손이 꼼지락 거린다. 내 몸안에 악마와 천사가 정말 망치들고 싸우는듯하다 가슴이 쿵쿵 거린다. 에이 힌번 장난으로 하는건데 뭐하며 칩 체인지를 하러갔는데 300불 주니 조그만 100불짜리 칩 3개를 주는게 아닌가. 우씨 암튼 교환해 가지고 와 그 로칼인이 가는쪽으로 칩을 올렸다. 갑자기 딜러가 스톱시킨다. 음 왜 그러지? 딜러가 내 돈을 가르킨다.
음 내 돈인디 문제 있냐 물으니 문제 많탄다. 빨리 빼란다. 주위에서도 난리다.
빨리 빼라고 하지만 내가 누군가 못빼하고 개기니까 딜러가 여기는 달러는 500불 미니멈이란다. 음 쪽팔린다.
여기서 돈 가지고 밖으로 나가면 등뒤에서 비웃겠지 하고 생각하니깐 안되겠다 잠시 스톱하고 바로 옆의 체인지 박스로 가려고하니 왠 중국넘이 자기가 바꿔준단다 700불을 마저 바꾸고 에이씨 하면서 간도 크게 천불을 질러 버렸다.이젠 잃어도 쪽팔리진 않겠지.
그런데 갑자기 고민이 생긴다 아무 생각없기로서니 한달 봉급을 털어넣다니. 후회 막급 머리가 막 돌아간다. 잃으면 다신 안온다. 지금 생각해 본다. 딜러가 돈 빼라는 것이 나에게 주신 마지막 선택이 아니었을까하고.
암튼 플레이어가 먹었는지 뱅커가 먹었는진 모르지만 우리편 난리가 났다. 카드 쪼는 넘 나한테 오더니 럭키 보이란다. 음 이 나이에도 보이 소리들으니 좋긴 좋군. 암튼 딜러 나한테 돈을 주는데 이런 조그만거 10개 같는데 큰거 하나 준다. 어릴적 스마일 운동한다고 갈구다니던 뱃지만하네.
찬찬히 살펴보니 유에스천불이라고 써있다. 막 신난다. 음 이번달이 보나스달도 아닌데 출장 수당하고 이거면 4달치 봉급이네 바로 챙겨 틸려구 하니깐 중국넘이 막 부른다 럭키보이 이번엔 어디다 갈거냐구.
우씨 난 저넘 따라가는데 나한테 물으면 난 어카냐 하면서 난 니가 가는 곳이면 무조건 오케이다 그랬더니 씩 쪼게 더니 아까 딴 돈 엎어서 배팅한다. 사람들 난리다. 분위기가 다 엎어가는 분위기.
음 나도 엎어가란 말인가 나 이미 보너스 받었는데 눈치까다 할 수 없이 한번 더 모험 2천불을 밀어 넣었다. 아까와는 심정도 다르다. 더 긴장된다. 시선이 딜러 손에 집중 로칼넘 카드 쪼는데 한 10분은 걸린다. 정말 이러다가 심장마비 걸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상대방이 먼저 카드를 오픈한다 표정도 좋다. 7끌이란다. 우리편 얼굴 본다. 중국넘들 쌈삥쌈삥하면서 난리치구 상대방 넘들은 따오를 연발한다. 이것들 뭐라 하는거야 하면서 그 넘 얼굴보니 똥빛이다. 음 순간적으로 코파카바나의 엔딩송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 귀에 들린다. 에이 쒸 아까 걍 갈걸 하면서 후회한다. 카드 오픈 2끝이란다. 음 졌네 하고 뒤돌아서려고 하니 카드 한장더준다.
이게 뭐꼬 다시 편나눠서 쌈삥과 따오가 연발된다. 암튼 우리편은 3삥이라고 하니 나도 모르게 나도 외친다 3삥 3삥. 카드 쪼는넘 가로 세로 보더니 3삥이란다. 음 뒤에 물으니 3삥은 3줄을 의미하고 따오는 그림을 의미하는거였다. 헉 3줄이라도 8이면 꽝이쟌여. 단 한번도 기도 안하던 내가 기도한다. 제발 8만 아니길 세로로 양쪽을 훝더니 이넘 카드 집어 던진다.
우리편 난리다 시발 욕이 나온다. 상대편 난리났다. 이 쪽 사람 생각 전혀 안한다. 딜러가 던져진 카드를 오픈한다 허걱 7이다. 우리 9끝이쟌여 이겼쟌여 희비가 교차한다. 로칼넘 뜻모를 웃음을 내게 보낸다. 나도 아무일 없던것 처럼 같이 쪼게주었다. 이제 3천불 올랐으니 난 간다하고 돈 바꾸고 총알 같이 카지노를 나왔다.
3천불 대략 200만원 3달치 봉급이다. 출장 수당도 이번달엔 1500불이니 거의5달치 일을 2시간도 안되는 시간에 해냈다는 뿌듯함에 호텔에 돌아와 누워도 잠이 안온다. 내일은 공항 체크인 일찍하고 듀티프리에서 간만에 식구들을 위해 쇼핑이라도 해야지 하고 잠을 다시 청했다. 이렇게 나의 도박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귀국후 내 생활의 변화는 전혀 없었다. 남들보다 1시간 전 출근 밤10시 11시까지의 야근도 다시 카지노 생각을 떠올리게 하진 않았다. 이렇게 한달이 지난 후 다시 출장이 잡혔다. 이런식으로 나의 카지노 방문은 시작되었다. 무슨 귀신이 달라 붙었나 90년초 중반 까지 거의 갈 때마다 큰돈은 아니지만 적게는 몇백불 많게는 몇만불을 땄다. 당시 국내에 달러 구좌까지 텄다. 하나로는 부족해 가족들 명의로 4개를 더 만들어 항상 달러 구좌엔 5만불 넘게 돈이 예치되 있었다.
주식 투자도 좀하고, 직장 일도 잘 되었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5년 걸려야 하는 대리를 2년만에 파격적으로 또 5년 걸려야 되는 과장도 2년만에 되었다. 월급외에 지급되는 출장 수당만으로도 2달생활하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그 동안 결혼도 했다 여유 돈이 생기니 그동안 신세지던 친구들에게도 베풀 수 있는 아량도 생기었다. 원래 성격 좋고 유순했던 내 주변엔 늘 많은 친구들이 있었는데 경제적 여유가 생기고 남들보다 빠른 진급등으로 더 많은 친구들이 늘 내곁에 함께 했다.
이 때까지도 난 내가 도박에 카지노에 중독 되었단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현지에 3년을 근무하면서도 한달에 한두번 정도 잠시 들려 잠시 즐기고 돈이 생겼다는 사실외에 앞으로 다가올 끔직한 일들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내 주변에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도 말이다.
그 일이 내게도 오리라곤 결혼도 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인과 아이도 생겼다. 세상 모든것이 행복하기만 하다. 안정된 직장, 건강하신 부모님, 사랑스런 내가족들.
재테크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도 행복하지만 더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생겨난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충분히 행복했는데.
많은 돈을 주식에 넣었다. 처음엔 잘되는가 싶더니 서서히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별 걱정은 안했다. 잘 되겠지 하면서 주식이 계속 내리막이다. 아직 까지는 관망하고 있다. 곧 오를거야. 마치 바카라에서 줄 꺽이기 기다리는 심정이었던 듯하다. 잘 아는 은행 대리가 대출 좀 해가란다. 음 내 돈 필요한거 어찌 알았누 하고 놀라면서도, 음 역시 그분이 날 아직 돌보시는군 하면서 아무 생각없이 받았다. 이렇게 계속 물을 길어 날라도 하염없이 곤두박질 치는 주식.
이제 달러 통장밖에 남은게 없다. 은행 대출 받은 돈만 억소리가 난다. 생활도 바뀌었다. 항상 1시간 전에 출근하던 것도 밤에 걱정으로 잠 못 이루어서인지, 간신히 지각을 면할정도다. 상사들이 자주 묻는다. 요즘 걱정이 있냐고. 난 솔직하지 못했다. 대부분이 그러하리라. 아뇨 문제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곤 더 이상 애길 안했다. 이때라도 솔직히 애기하고 도움을 받었었다면.
은행 대출 이자 독촉이 날아 온다. 달러 구좌를 깨야할 판이됐다. 거기에다 2년전에 치과의사 친구에게 서준 3천만원 짜리 연대보증이 잘못되어 나보고 다 갚으란다. 바로 처리안하면 급여 차압을 한다고 엄포를 논다. 누가 치과의사가 부도가 나리라 생각이나 했겠는가? 아 이 일을 어떻해 하나 대출 이자도 못내서 일시 상환하라고 은행들 마다 난리인데. 집에 사실대로 애기하고 도움을 받을까? 아니면 대충 정리하는데 까진 해보고 그때가서 다시 생각해볼까? 이런 생각에 일도 눈에 안들어 온다.
일단 대출 이자나 갚고 기한 연장하고 주식깡통 정리한다니깐 그거 먼저 해결하자 하면서 그동안 들어논 개인연금, 보험, 정기적금 닥치는대로 정리를 했다. 정리된건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이제 한 숨 돌리려나 했더니, 지금도 욕나오는 IMF가 꽝터졌다.
더 이상 초이스가 없다. 매일 사무실로 걸려오는 수십통의 은행의 상환 독촉에 이젠 직원들이 날 보는 눈치가 느껴진다. 사무실에 걸려오는 잔화 벨소리가 두렵다. 능력있는 과장에서 갑자기 문제아가 된 느낌이다.
궁리 끝에 드디어 카지노가 떠 오른다. 지난 10년간 연승 행진한 그 곳 바로 거기다. 이렇게 생각하니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지 하고 날 원망까지 해본다. 얼마나 어리석은 놈이었던가 나는. 달러 통장을 정리하니 대략 7만불이 된다. 800원 하던 환율이 거의 1200원이다. 은행 직원은 한달 정도 더 버티면 1400까지 갈텐데 좀만 기둘리라고 한다. 어차피 달러로 찾는거고 단 하루도 지옥같었던 나는 그 돈을 몽땅 찾는다. 찾어서 조금만이라도 빛 정리를 했었으면.
외환관리법이 있어서 만불이상은 가지고 나가지도 못하는데 혼자 머리를 굴려본다. 대략 이제까지의 나의 시드 머니는 3천에서 5천이었다. 물론 2천이상 체인지 해본적도 없이 100% 윈했으니 2만불 정도면 한번 갈때 마다 최소 5천은 되니까. 두세번 갈때마다 한건 정도씩은 해결할 수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어떻해 나가느냐다. 암튼 카지노로 해결 방법을 찾은 나는 출장 기회를 잡어야만 했다. 다시 회사 생활이 활기차진다.
IMF로 달러가 가치가 생기니 회사에서도 수출에 더 집중을 한다. 바이어들과 매일 전화로 컨텍하고 건수 만들기에 밤낮이 없다. 출장 스케줄이 나왔다. 이 번 한달 동안 필리핀 출장 2번, 미국 출장1번 결재를 올렸더니 사장, 전무 모두 기대한다고 잘 해 보라고한다.
음 절라 미안한 맘도 있었지만 한편으로 그래 일도 열심히 하면 되지 뭐 이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니 맘도 편하다. 나없는 동안 은행에서 회사로 또 회사에 연락 안되면 집으로 전화갈 지 모르니 각 은행 마다 대부계 카드계 담당들에게 전화를 때렸다. 나 출장인데 갔다오면 일부는 처리할테니 연락하지 말라고 부탁 또 부탁을 했다. 인생 새옹지마라더니 엊그제 돈 대출해 준다고 난리쳤던거 같은데.
이제 맘이 편하다. 모든게 해결된 듯 맘 편히 비행기에서 잠을잤다. 아침 8시 비행기를 탔으니 오후에 열심히 일을 했다. 3박4일이니 최대한 일을 빨리 끝마쳐야 시간이 남는다고 생각하니 정말 정신없이 일했다. 저녁 식사 접대는 전부 켄슬해버렸다. 그 시간에 카지노에서 돈 벌 생각에.
첫날부터 4천불이 나갔다. 밤새 했는데. 5시가 되서 자리에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또 일을 해야하니까. 잠이 밀려든다. 이동중에 로칼 호스트와 보통 애기하면서 이동하지만 안면까구 걍잔다. 코까지 골아가면서.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고 밤이 왔다. 몸은 천근 만근이지만 다시 카지노로 향한다. 오늘도 6천불을 잃었다. 잃을때는 만불이 내 4달치 수입이라는 사실은 생각도 안한다. 잠 한숨 못쉬고 다시 일을 한다. 체력의 한계인가 상담중에 졸기도 한다. 아무튼 이번 출장에 약 30만불의 오더를 챙겼다. 할 일은 한셈이다.
마지막 밤이니 오늘은 빼도 박도 못하고 저녁 접대를 받어야한다. 몸이 안좋다는 핑계로 저녁만 간단히 하자고 하고 카지노로 향한다. 저녁 9시 내일 12시 비행기니 약 12시간의 시간이 있다. 이젠일도 잊고 여기에 전력 투구하리라 다짐하며 카지노에 들어섰다. 오늘은 시간이 있으니 좀 차분히 하리라. 몇년 동안의 카지노 승리 덕분에 왠만한 딜러는 다 안다. 이들이 내게 붙여준 닉네임까지 있을 정도다. 내 이름은 칼 KAL 이다. 코리안 에어가 스폰서 해주는 도박사아니냐 고 딜러들이 우스개로 불렀던 닉이 이제는 공식화 되었다. 승부를 위해서는 오늘은 달러 게임을 해야 하는데.
만불 가지고는 미니멈 10번 베팅밖엔 못한다. 이틀에 걸쳐 잃었던 만불이 너무도 아쉽다. 일단 밖에서 만불 정도를 올려 2만불로 VIP에서 승부를 보리라 작심하고, 마바리판에서 (삥바리라고도 하는 베팅 금액 10-50만원 맥스인 판을 의미) 약8시간의 사투끝에 만불 정도 되는 로칼 칩을 얻었다. 아 시간이 4시간 정도 남았는데 서두르자.
VIP안이 오늘은 썰렁하다. 빅 테이블에 첨 보는 중국넘 하나만 플레이 하고 전부 스몰 테이블에 있다. 중국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기록지를 살핀다. 그림 황이다. 언제 부터인가 난 이미 이 카지노의 다른 사람들에게 바카라 고수로 알려져있다. 내가 게임을 하는 동안엔 늘 뒤에 라이더들과 카지노거지 (비하하려는 뜻은 아닙니다. 당시 실제로 그렇게 불렀기 때문에 이렇게 사용하니 이해 바랍니다)들이 대여섯명씩 달라 붙어있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도 안보이고 그 녀석과 나 단 둘이다. 보통 빅 테이블 매치는 편싸움이 되기 일 수이다. 왜냐하면 서로 카드를 쪼려고하는 경향이 강하고 상대방이 잃어야 내가 딴다는 착각 때문에 딜러와 싸운다는 걸 잊고 이런 경우엔 둘 중 하나가 망하기 쉽상이다. 나 그 녀석에게 카드 리셋하고 다시 하자고 그림 황이라고 하니 이녀석 오케이 하고 셔플 시킨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니 이 녀석 내 반대로 슬슬 틴다. 아 이럼 안되는데 하면서 다른 테이블이 없기에 나 소신껏 간다. 가끔 같은 방향으로도 가고 암튼 이런 썰렁한 겜이다 보니 시간은 없는데 돈이 안오른다. 점점 초조해진다. 아직 카지노 귀신이 돌보고 있는가 7천불 정도가 올랐다. 시간을 보니 이미 10시 절라 서둘러야 한다. 간신히 도착해서 비행기에 오르자 아무 생각없이 잠에든다. 기내식이고 뭐고 필요없다. 눈을 뜨니 김포공항이다. 공항 화장실서 세수를 하고 정신차리고 거울을 통해 내 얼굴을 보니 피골이 상접해있고 동공이 아직 풀려있다. 옷에선 담배에 찌들은 메퀘한 냄새 헛구역질이 올라온다. 공항밖 찬바람을 맞으니 갑자기 현기증이 난다. 이제까지 느껴본적이 없는 느낌 .
즐기려고 간 카지노가 아니고 돈을 위해 간 카지노다. 이제 직장인 이전에 도박꾼이 된 것이다. 7천불로 일단 각 카드부터 정리했다. 그리 오래된 연체도 없었고 돌려막기 덕택이지만. 한숨은 돌렸다. 원전 중 만불을 더 바꿔서 대출이자도 조금씩은 정리가 됐다. 사무실로 오는 전화도 줄었다. 다음 출장들에서도 많이는 아니지만 1-2천 불은 가지고 들어 올 수도 있었다. 무역 실적도 좋아서 회사에서 표창도 받고, 새로운 업무들도 인계받었다. 하지만 내 머리속엔 어떻하든 카지노에 가서빨리 돈을 따서 빛정리를 하고 다시 시작하고픈 맘 뿐이었다.
본질적으로 나의 채무들은 약간의 시간을 얻었다 뿐이지 해결된 것은 실제 거의 없었다. 출장 잡는 것도 정도 껏이지 더 이상 나갈 수도 없다. 또 다시 앞이 꽉 막혀 버린 것이다. 다시 매일 매일 머리 속으로 묘안을 짜낸다. 기가 막힌 수가 떠 올랐다. 멀쩡한 와이프를 중환자로 만들어 버렸다. 한 3-4달 정도 토요일 근무가 불가능하다고 결제를 올려 재가를 받았다. 완벽을 기한다고 집 전화번호까지 회사에 알리지 않고 바꿨다. 드디어 거짓말이 시작된 것이다. 한번이라도 거짓말을 해 본 사람은 알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거의 뽀롱이 난다는 사실을. 암튼 난 완벽하게 처리했다.
이 기간 동안 매주 금요일 저녁4시만 되면 김포로 날라갔다. 그리고 돌아오는 것은 일요일 비행기를 예약했다. 처음엔 호텔룸도 잡았다. 하지만 잘 알다시피 시간 재 놓고 플레이 하 는 놈이 호텔방은 필요가 없었다. 짐 풀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일정으로 나는 매주 약 34시간 정도 플레이를 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라 과연 정상적으로 플레이를 할 수있었을 지를.
매번 시계가 일요일 9시를 가르칠 때, 난 한시간의 여유 밖에 없었음으로 풀 베팅을 시작했다. 따면 5천불에서 만불, 지면 2만불 이었다. 처음에는 하지만 한번 질 때마다 내 맘은 더욱 초조해졌다. 다음엔 3만불 그 다음엔 5만불까지도 가지고 나갔다. 이 돈이 어떻해 생겼겠는가. 이미 나의 한도는 넘어섰다. 그럴수록 더 절실했다. 그때 생각으로는 카지노만이 내가 다시 원점 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친구들에게 돈을 돌렸다. 대략 8천 정도다. 어마어마한 돈이다. 하지만 나에게 미소 짓던 카지노 귀신은 이제 비웃음만을 보낼 뿐이다. 1-2만불이 올라도 난 스톱을 할 수가 없었다. 내겐 몇개의 시한폭탄이 이미 카운트 다운에 들어 갔음으로.
이 중 하나가 터지면 연쇄폭발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2만불은 돈 같지도 않다. 가끔 5만불을 베팅하기도 했다. 내가 재벌2세도 아니면서 카지노 주위에선 날 서서히 돈질하는 미틴넘 으로 본다. 얼마를 잃었는지 이젠 생각도 안난다. 계산하는 것 자체가 싫다. 이제 더 이상 돈을 빌릴 때도 없다. 온갖 잔머리를 굴려도 돈 구할때가 없다. 아 천불만 있어도 날라갈텐데.
차도 이미 팔았다. 집도 팔고 전세로 옮겼다. 또 옮기자고 하면 모든게 들통날 듯하다. 내가 왜 이 지경까지 왔는가 아무도 모르게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아닌가 아직 누구도 내가 카지노에 다니는 사실을 모른다. 혼자 매일 술을 마시며 괴로워하지만 앞이 깜깜하다. 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걸 지워 버리고만 싶다. 하지만 그럴수 없지 않은가. 걍 눈물이 난다.
대학 동창들과 10년동안 모았던 곗돈이 생각났다. 이거 쓰고 따서 바로 챙겨 넣자 이렇게 생각하고 약 4천만원의 돈을 준비했다. 단 한번도 이거 잃으면 어떻해 될까 생각도 안해보고 결과는 참담했다. 모든 걸 날렸다. 아무리 이겨도 일어설 수 없는 나는 이미 처음부터 패자였던 것이다. 친구들의 돈은 어떻하든 다시 채워 넣었어야했다.
방법은 한가지다. 퇴직금 그리고 솔직한 고백이었다. 회사에 퇴직금 가정산을 부탁했다. 약 3천 정도 나온다. 아무일이 없는 상태에서였다면 엄청 큰돈이지만 내겐 칩 몇개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천 정도가 부족하다. 다 잃어도 친구들은 잃을 수 없다. 난 또 한번 무모한 도전을 선택했다. 3천으로 천만 올려서 오자고 이미 나온 답이다. 이젠 정말 개털이다. 남은건 전세금 8천이다. 아 지금 스톱해도 되는데 지금 스톱해도 늦지 않었어~~~~~ 현재의 때늦은 후회다 이 8천 역시 카지노 칩 박스에 고스라니 헌금했다.
모든걸 잃고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보자고 하신다. 그것도 집 밖에서 서류를 한뭉치 꺼내드신다. 은행 빛들이다. 카드 빛까지 합치니 거의 3억이 넘는다. 어찌 된 일이냐고 묻는다. 고개만 숙이고 눈물만 흘렸다. 여자가 생겼냐고 했다. 아니라고 말했다. 그럼 도박이겠군 하신다. 아무말을 못했다. 이 빛을 어떻해야 할까?하고 묻는다.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이제껏 살아오며 단 한번도 걱정을 끼친 적이 없었던 나였기에 실망감과 당혹감은 얼마나 크셨을까 생각해본다. 이게 전부냐? 하고 물으신다. 헉 해결해 주실라나? 되먹지 않은 기대감을 갖고 "눼"하고 다시 한번 거짓말을 했다. 그거 외에도 몇개더 그리고 친구들 빛과 곗돈 합치면 2억 정도는 더 남었는데.
차마 그 이야길 못한다. 아버진 아무 말 없이 들어가 식구들에게 티내지 말고 씻구 자라고 한다. 몇주 후 아버지는 은행 빛을 정리를 하셨다. 남에게 1원 한푼 구걸 하지 않던 분이 60년 넘은 죽마고우에게 빛을 내셨던 것이다. 난 또 하나의 고민이 생겼다. 아직 말 못한 빛들은 어떻해하나.
. 친구들에게 이실직고를 했다. 카지노 애기도 했다. 죽을 죄를 졌다고 사과했다. 모두들 너무나 놀라했다. 어떻해 니가 카지노를 하는 그런 맘으로 안타까워 했다. 돈보다는 날 더 걱정해 주었다. 몇 몇 친구가 나머지 은행빛까지 처리를 해주었다. 이미 튼 금액을 연체한터라 황색으로 분류 되 이젠 카드고 뭐고 쓸 수 없다. 하지만 난 정말 복 받은 놈이구나. 수도 없이 감사하고 감사하며 다시는 이런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말자고 다짐 또 다짐했다.
직장을 옮겼다. 남들 보다 월등한 급여를 받았지만 그 정도로는 다시 재기할 수 없단 판단이 섰기에 아쉬움없이 사표를 제출했다. 끝까지 날 말리는 사장님 전무님에게 그간의 애기를 다했다. 정말 죄송하다고 무릎 꿇어 사과를 드렸다. 규정에도 없는 전별금을 주셨다. 어려운 일 있으면 꼭 연락하라고 하며 보내주셨다. 새 직장은 연봉 계약을 하고 들어갔다. 일부러 인센티브 조항을 만들어 연봉은 평범했지만 실적급을 확실히 하고 들어갔다. 생소한 분야였지만 이동통신 관련 부품 관련 회사라 뭔가 미래가 보여서 주저 하지 않았다. 이렇게 나의 2번째 직장 생활이 시작되고 모든것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듯 보였다.
과연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일을 시작한지 6개월 후에 는 난 어느 정도 이 바닥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세일즈맨이 되있었다. 처음 6개월 생소한 전자 관련 용어와 기본 지식들은 하루도 빼지 않고 새벽4시까지 공부한 덕택인 지 전자 공학을 전공한 동료 직원들이 내게 물을 정도로 발전했다.
지난 10년간 내가 저지른 실수에 대한 생각과 후회할 시간도 없이 그렇게 정신 없이 일했다 . 하루에 대전 구미 창원을 도는건 기본 코스였다. 최소 7-8개의 연구소들과 업체를 돌며 온머 리가 희어지는 것도 모를 정도로 전력을 다했다. 외국 바이어들과만 거래하다 국내 거래를 하다보니 아니꼬운 일도 수도 없이 많었다. 몇 번을 때려 치려고 했지만 이를 악물고 참었다.
1년이 지나 연말 인센티브를 받고 나니 거의 6천만원 정도를 벌었다. 이제까지 받은 모든 돈들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저축을 했기에 연말에 가까운 친척과 친구들의 채무를 조금 해결 할 수 있었다. 정말 너무 기뻤다. 하나 하나 해결해 나가자. 다음 해에도 난 변하지 않고 열심히 잘해나갔다. 단 한순간도 카지노에 대한 생각이 떠 오르지 않았다. 일을 하는 즐거움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으로 힘든 일이었지만 하루 하루가 즐거웠다.
프랑스 본사에서도 연봉을 더 많이 책정했다. 인센티브 조건도 만족할 만했다. 페이저 시대가 완전히 가고 셀루라와 PCS폰이 뜨기 시작했다. 이제껏 뿌려 놓은 발품이 효과를 발휘한다. 앉아서 오더를 받을 정도다. 이럴때 일수록 사람들을 더 잘 챙겨야 한다. 더 성실하게 고객들을 대했다. 막 시작하는 벤처.
모두들 외면했지만, 난 이들에게도 최선을 다해 영업을 했다. 내 직속으로 연봉 4천짜리 영업 직원 4명을 둘 정도가 되었다. 발이 10개라도 혼자 처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을 두면서 실적은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난 이제 가끔 얼굴 보이고 애로사항만 둘어 주면서 영업 보다는 관리에 더 치중하는 위치가 되었다. 프랑스, 동유럽에 자주 드나들었다. 그 해 고한에 내국인 카지노가 생긴 것이다. 카지노가 생겼다는 소리에도 난 커다란 동요도 없었다. 나랑은 다시는 상관 없는 곳이야. 그 해 연말이 되었다. 인센티브를 계산해 보니 정말 놀랐다. 순수 인센티브만 1억이 넘어 거의 2억에 가까운 돈이다. 아 내가 해낸 것이다. 그 해 종무식, 여의도 모 빌딩 스카이 라운지에서 직원들과 파티를 하고 다음 해 연봉 계약도 마쳤다. 눈발이 조금씩 날리는데.
이것이 카지노 귀신의 호출이었다. 지금 누가 "왜?"냐고 물으면 할말이 없다. 종무식 후 갑자기 고한의 강원랜드 오픈 뉴스가 떠오르고 일월 연휴는 거기서 보내야지 란 결심을 하고, 바로 차를 고한으로 몰았다. 처음 가 보는 길이라 엄청 헤멨다. 주천으로 들어가 고갯길을 넘고 물어 물어 카지노를 향했다. 이제껏 2년의 생활 그리고 10년간의 직장 생활을 카지노로 인해 버려야 했었던 일, 아버지의 슬픔 친구들의 도움이 모든 걸 난 단 몇초만에 다 지우고 그렇게 고한을 향했다. 2박 3일 일정으로.
카지노에 들어가 보고 놀랐다. 그 조그만 규모에도 놀랐지만 발 디딜 틈도 없이 많은 인간들에게 놀랐다. 수백번을 카지노에 가보았어도 이렇게 북실 되는건 처음이다. 그렇게 인간많은 마카오의 리스보아도 이렇지는 않았다. 위 층을 올라 갈라하니 뭐가 복잡하다.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 망설이다 5백 정도 바꿔 바카라 뒷전에 섰다. 맥스 50인데도 갈 구멍이 없다.
가끔 마귀같이 된장질 하는 블랙홀 만 비워있다. 하여튼 뒷 전에 서서 하는 둥 마는 둥 500을날렸다. 눈에 꼭지가 돌기 시작하고 보이는게 없다. 다시 천만원을 찾아서 자리를 구했다. 당시만 해도 초창기여서 그랬는지 다들 돈이 넘쳐났다. 한 두 슈에 일이천 잃은 사람은 부지기수였다.
그래도 계속 돈을 찾어 플레이 하느라 자리 사는것도 장난이 아니었다. 몇시간을 개기다 보니 운좋게 자리를 잡았다. 이미 몸은 파김치가 되어 있었지만 암튼 이날 난 3천 정도를 날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텔에서 잠을 자는데 잠도 안온다. 아버지 그리고 가족 생각 회사 생각 단 한번도 나지 않았다. 오직 돈과 칩만 생각이 났을 뿐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회사에 시무식이 있는 날이다. 난 아직도 고한이다. 전화를 때려 외국이라고 뻥친다. 개인적인 일로 일주일 정도 있다가 들어가니 양해해 달라고 거짓말을 하고, 집에는 회사일로 해외 출장 나왔다고 뻥을 쳤다. 약 20일 다시 모든 걸 날렸다.
차도 잡혔다. 주머니엔 만원짜리 서너장. 카드 지갑엔 든 10여장의 카드는 맥스로 다긁었다. 현금 서비스도.
20일 사이에 몇 억을 갖다 바친 것이다. 몇 일 게임하면서 얼굴을 튼 인간들과 고한으로 내려와 여관방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돈만들 궁리를 해본다. 몇일 간 수없는 거짓말로 다시 몇 천을 마련 해서 올라가지만 내려 올 땐 빈털털이로 꽤재재한 모습으로 내려왔다.
2주 동안 면도도 안해서 완전히 도적같은 얼굴이 되어있었다. 내가 카지노 귀신이 된 것이다. 직장과 집에 연락을 안한지도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오늘도 난 달랑 입장권만 산 채로 카지노에 들어가서 빈 기계 앞애 앉았다. 불과 몇일 전에 기계에서 이천육백 잭팟을 터트렸었는데도 지금은 거지다. 구석에 쭈그려 앉어 있는데 낯익은 얼굴이보인다.
난 고개를 숙이고 황급히 반대 편으로 뛰었다. 와이프였다. 끝까지 날 쫒아왔다. 밖에 아버지가 계신다고 한다. 난 눈물을 흘렸다. 이 눈물을 흘린 지 얼마나 되었다고. 와이프가 내게 말한다. 잘 될거라고. 다시 올라가서 시작하자고 한다. 날 탓하지 않는단다. 잘못이 있다면 자기에게 있다고.
밖에 나오니 아버지가 계신다. 이번에도 아무말 안하신다. 얼굴을 보더니 말없이 눈물만 흘리고 계신다. 올라가자고 하시지만 이미 차도 맡긴 상태인데 말씀 드렸다. 차를 찾아서 서울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내 얼굴을 보고 쓰러지신다. 형은 죽일 놈이라고 손목을 잘러 버리겠다고 한다. 벌써 2번째다. 지난번 일로 형은 장가도 가지 않고 벌어논 돈 몇억을 내 빛 잔치하는데 홀라당 써 버렸으니 그럴만도 했다. 부쩍 큰 아들 녀석은 뭔 일이 있는지 감을 잡었는지 밖에서 조용히 서서 울기만 한다. 난 다시 굳게 입술을 깨물으며 다시는 다시는 카지노를 안한다고 굳게 결심했다.
"난 도박중독자가 아니야" 단지 모든 걸 빨리 끝내고 싶었고 그래서 빨리 정상적으로 살아보려고 이 방법을 택했던 잘못이 있을 뿐이지 도박이 좋아서 한건 아니라고 변명하면서 거의 한달간의 무단 결근으로 회사는 자동 정리되어 있었다. 내가 담당하던 100여개의 업체들은 내 직속 부하들이 고스란히 인계했던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도 어쩌면 잘 되었던 것이다. 인센티브 조항이 늘 거슬렸는데 이 기회에 날 자를 수 있었기에.
내가 가진 것만 날렸어도 그나마 해결책이 보였는데 카드 빛과 채무들이 다시 앞을 막막하게 했지만 아직까지도 날 도와주려는 사람들 때문에 신용 불량자가 되지 않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약 2주 정도 많이 방황했다. 다시는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집에 쳐 박혀 아무 전화도 안받았다. 그저 모든걸 지우고 싶었고 이게 꿈이었으면 하고 바랬다. 정말 꿈이었으면
이제 다시 직장에 나가는 아내가 저녁에 들어오면 내 눈치를 많이 살핀다. 나 모르게 지갑에 몇십만워을 넣어두고 가끔 바람이라도 쐬라고 한다. 나 아니었으면 호강 할텐데 남편 잘 못 만나 고생하는구나 생각하니 너무도 미안하다. 마음을 추스리고 회사를 알아 보았다. 나이가 관건이었지만 내 경력 정도면 어렵진않으리라.
자본금 100억이 넘는 외국계 IT회사에 부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난 이렇게 제 3의 인생을 다시 살게 되었다. 이 모든게 가족의 사랑이 있었기에가능한 일이었다. 죽자 사자 일을 했다. 월급도 받으면 10만원을 제외하고는 어머니께 드렸다. 우리 가족의 생활은 와이프의 봉급만으로도 충분했기에, 어머니는 매달 내 빛을 정리해나가셨다.
이렇게 2-3년을 일했다. 빛도 정리가 다 되었다. 직급도 이사가 되었다. 비록 간신히 빛쟁이만 모면했을 뿐이었지만 맘도 생활도 너무 좋았다. 아주 절제된 생활은 아니었지만 남들 처럼 샛길로 빠지진 않았다. 직장 동료들과 친구들과 자주 만나 술을 마시는 것이 유일한 나의 탈선이었다.
내 전력을 아는 친구들은 술좌석에서 마다 나의 카지노 경험담을 묻곤했다. 그런 경험 후에도 이런 모습으로 돌아온 나에게 진심으로 찬사를 보냈다. 이사가 되어 연봉도 억대가 되었다. 하지만 연봉과 비례하여 스트레스 역시 올라만 갔다. 재계약과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로 궤양이 돗았다.
목이 돌아가지 않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했다. 이런 압박감은 급속도로 나의 건강을 해치기 시작했다. 친한 친구 녀석이 동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일단 1억짜리 법인으로 일을 시작하자고 한다. 나름대로 사업성 검토를 해보았더니 승산이있는 듯했다. 하루 하루가 너무 큰 스트레스였기에 과감하게 자리를 내놓고 나왔다. 조그만 사무실을 하나 얻어 시작한 사업은 6개월 정도 지나니 투자금을 회수하고, 월급쟁이 때보다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 수입이 오르기 시작했다.
업종도 다양화하고 본격적으로 일을 벌려 1년후에는 증자도 하고, 투자도 받아서 다른회사를 인수했다. 회사 2개를 운영하는 대표가 된것이다. 비록 크지만 않지만 자본금 5억과 10억짜리회사는 순풍에 돗 단듯 잘 나갔다. 직원들도 불과 1년만에 70여명이다. 처음 시작할 때 5명에서 초단시간에 발전을 한것이다. 마치 타오르는 불에 휘발유를 부은듯이 승승장구였다.
대략 년간 수익 400억 정도 되는 프로젝트가 눈에 들어왔다. 인맥과 적당한 기름칠이면 성공할 듯했다. 기름칠을 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모았다. 이제껏 축적해 놓은 자금과 이 사업을 아는 친한 친구들에게 투자를 받고 이사들과 상의해서 회사의 다른 자금도 유용 대략 수억의 금액을 모아 기름칠을 하기 시작했다.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하지만 처음 부터 뭔가가 이상했다. 처음엔 브로커의 배달 사고가 생겼다. 다행히 바로 발견하여 손실은 없었다. 다른 브로커를 구해야만 했다. 온갖 백을 동원해서 연결된 브로커, 그를 통해 작업에 착수했다. 주사위는 던져 졌지만 주사위의 결과가 1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사기 아닌 사기다. 회사의 모든 걸 던졌는데 앞으로 1년을 더 버텨야 한다니.
당장 운영비에 압박이 들어온다. 이사회의만 하면 싸움이 일어나기 일수다. 이렇게 몇개월을 버텨냈다. 사무실도 층으로 임대해서 쓰던 것을 100평 짜리로 옮겼고 직원들도 10여명으로 줄였다. 최소의 인원만 남기고 움츠리기에 나선 것이다. 뭔가가 이상해 그동안 브로커의 뒷조사를 했다. 혹시나 했건만 사기였다. 이제 희망도 사라져 버린것이다.
하지만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브로커에 들어간 자금 회수를 위해, 그의 회사를 찾어가 공갈 협박 회유를 수차례했다. 다른 프로젝트들도 검토했다. 집에 못 들어가는 날이 더 많아졌다. 회사에서 밤을 새우는게 다반사다. 이사들을 동원해 자금 확보에 나섰지만 내생각 처럼 뛰어주진 않았다.
투자자들에게 배당을 못 준지도 몇달이다. 사무실 임대료도 몇달 밀렸다. 직원들 봉급만은 어떻해하든 챙기려고 매달 카드에서 현금 서비스를 받아 주었다. 하지만 브로커의 상환금은 한달에 몇 천씩 들어오고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 통보는 다시 한번 날 막다른 절벽으로 밀어 넣었다. 모두가 돌아간 사무실에 혼자 앉아서 법인 통장을 정리해 보았다.
약 칠천 정도가 남아있다. 이 역시 월말이면 모두 지출해야 할 자금이다. 결국 다시 난 깡통 찬 셈이다. 급한 상환요구 들어온 것 일억과 임대료와 기타 공과금 밀린것 다는 아니더라도 반 정도 정리하려면 오천 정도 필요하다. 이렇게 생각하니 방법은 하나다. 카지노다.
어차피 앉어서 망하나 가서 잃으나 매한가지 라고 생각하고 카지노행을 결심한다. 마침 사북에 빅 카지노가 생겼다니 지난번 보단 낫겠지하고 밤세 차를 몰고 갔다. 새벽에 도착 3-4시간 게임에 몇 백을 챙겼다. 바로 차를 몰고 다시 사무실로 출근했다. 오후에 다시 카지노를 향했다. 또 몇백을 이겼다. 다시 차를 끌고 서울로 올라왔다. 이러기를 한달이다.
질 때도 있었지만 이기는 경우가 더 많았다. 덕분에 임대료와 공과금 약간은 처리할 수있었다. 월말 결제에 필요했던 돈도 그대로 지급 되었다. 그 사이에 수금도 되고해서 또 한달은 넘길수가 있었다. 난 철인이 아니었다.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도저히 차를 가지고 갈 수가 없었다. 강원랜드 리무진을 오후에 사무실 앞에 대기시키고 회사 일 정리되는대로 바로 강원랜드로 달렸다.
이렇게 수개월이 지났다. 브로커 자금은 아직 4분의1도 안됐다. 투자자에게는 매일 매일 이 핑계 저 핑계로 상환을 미뤄 나갔다. 직원들 아무도 모른다 내가 뭘 하는지 그들에겐 월급 안 밀리고 나오는게 관심일 뿐이다.
이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회사 자금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어차피 문 닫어도 내가 대표이기에 자기들은 책임을 면할 수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앞에서만 열심이다. 드디어 일이 터졌다. 결국 난 수술대 위로 올라 가야만 했다. 수술을 받기 전 그 통증에도 난 의사에게 수술을 마룰수 없냐고 물었다. 지금 수술받으면 모든게 끝이라고 말하며.
장이 터져 복막염까지 갈 수 있다고 바로 칼을 댔다. 6시간에 걸친 대수술이었다. 의사는 약 4-50일 입원을 명했지만 난 그럴수가 없었다. 내가 호스를 코에 박고 그리고 소변 주머니를 달고 다닌 그 순간에도 투자자들의 독촉은 피할 수가 없었다.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0여일만에 퇴원을 했다.
사무실로 돌아가 통장을 보니 5천 정도 되었다. 투자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걸로 시간을 연기해 보려했지만 전액 상환해 달란다. 다시 리무진을 불러 카지노로 향했다. 배에 아직까지도 실밥 자리가 아물지 않었는데도 결국 이러기를 수차례 난 다시 모든 걸 날렸다. 회사에 연락도 안했다. 사북에 1달 정도 머물렀다. 게임을 하진 않았다.
게임을 하진 않았다. 돈도 없었지만 어떻해 일을 처리할 수 있을지 생각하느라 한달을 보냈다. 회사와 연락을 했다. 이사들 나보고 공금을 유용했다고 한다. 빨리 채워 넣으라고 한다. 주식회사니 유용은 유용이군. 하며 곧 채우겠다고 애기하고 난 유랑길에 올랐다. 여기 저기를 떠 돌아 다니며 노가다도 하고 배달도 했다. 재워주고 먹여주고 약간의 돈만 되는 일이라면 범죄가 아닌건 뭐든 했다. 집과도 회사와도 연락을 끊었다. 나 스스로 해결의 방법을 없애고 도피 행각을 한 것이다.
거의 5개월을 헤메던 올 1월 불심 검문을 당했다. 이미 기소가 되었지만 찾지 못해서 기소중지자가 되 있었던 것이었다. 설마했는데 회사 이사들이 날 고소한 것이었다. 유치장에 일주일 지내며 조사를 받았다. 모든 사실을 밝혔다.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란 수사관의 질책과 동정도 날 구할 수는 없었다. 유일한 방법은 합의였다. 부친과 와이프가 경찰의 연락을 받고 유치장에 왔다. 플라스틱 유리창으로 본 그들의 얼굴은 나보다 더 초라해 보였다. 눈물도 흘릴 수가 없었다. 아 내가 왜 이 지경에 까지 왔단 말인가. 부친은 합의를 하려면 집을 내 놓아야 한다고 했다.
난 아버지께 제가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하고 그 집은 아버지 재산이니 제가 죽어도 손을 댈 수 없다고 했다. 아버지 역시 나머지 식구들은 살아야 하지 않냐고. . . . .
애비가 못나서 해결해 주지 못하니 맘 굳게 먹으라고 말하시고 가셨다. 등을 돌리고 나가시는 아버지에게 난 속으로 아버지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수도 없이 되뇌였다. 유치장 담당 형사가 아버지가 가시면서 돈 30만원과 사식을 넣었다고 한다. 스스로 내 자신을 돌로 쳐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이라고 자책해본다. 구치소로 옮겨 약 3개월간 있으면서 수없는 참회의 반성을 했다.
고소인들에게 매일 편지를 썼다. 가진것이 없었지만 나의 지나온 생활을 아는 이들이라 결국 돈을 포기하고 합의를 해주었다. 집행유예의 선고를 받고 난 다시 돌아왔다. 이제 내겐 남은 것은 가족과 빛 그리고 전과자라는 오명 밖에는 없다. 이미 2개의 회사는 경영권이 넘어갔다. 하지만 이젠 절대 잊지 않으리라. 같은 실수를 다시는 하지 않으리라. 한번에 모든 걸 얻겠다는 일확천금의 꿈은 꾸지 않으리라. 내가 땀 흘려 벌지 않은것은 결코 내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곱 씹으며 살아가리라. 모든것을 잃고 두번이나 다시 재기하지 않았던가? 이제 시작이다. 난 다시 태어났다. 카지노가 없는 세상에 도박이 없는 세상에.
인간이기에 실수를 하였습니다. 인간이기에 용서를 받었습니다. 인간이기에 모진 인생 다시 한번 멋지게 살아 보렵니다. 지금 절망에 빠져 길은 카지노 하나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문은 절대 아닙니다. 더 깊이 빠지기 전에 나오십시요. 내일이면 다음 번에는 하며 미련을 갖지 마십시요. 끝을 못내는 당신에게는 저와 같은 미래 밖엔 없습니다. 당신의 인생은 아직 깁니다. 더 이상 오점을 만들지마시고 과감하게 나오십시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수 있습니다. 저와 같이 이 멋진 세상을 다시 한번 건강하게 살아 갑시다. 비록 가진 건 없지만 전 행복합니다.
제겐 아직 절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 모두가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50여억을 날린 경찰 서장도 지금 5만원을 잃은 누군가도 다시 시작 할 수 있습니다. 바른 길을 찾어서 빛이 있는 그곳으로 ~~
88년 해외 여행자유화 이후 전보다 더 자주 나갈 수있던 해외 출장, 남의 것을 단 한번도 탐해본 적도 공돈도 바라본 적이 없던 내가 무슨 이유로 카지노에 발을 들여 놓았을까 하고 지금도 수없이 생각하고 후회해본다.
칠순이 훌쩍 넘어 온 머리카락이 희게 변하신 아버지가 그 먼 고한과 사북을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날 찾으러 오셨을 때, 난 왜 아버지를 피해 달아나야 했나.
그 먼길 자식하나 다시 살리려고 노구를 이끌고 오셨었는데. 그 일을 겪고 혼자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고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겠다 생각했음에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기어이 인생에 줄을 긋고난 지금 너무나 많은 후회와 회한이 나의 전부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 나에게 이제까지 내가 잃은 수억원의 돈, 2개의 회사, 수많은 친구들보다 더 소중한 가족이 남아있었기에 지금 다시 한번 내 인생의 걸음마를 시작하려고 한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길을 가지 못하게 하고픈 점도 있지만, 이 글을 읽고 단 한분만이라도 다시 삶의 희망을 얻어 매사에 감사하며 저와 같이 다시 살아갈 수 있길 바라며 쓴다.
1989년 봄 어느날 바이어와의 상담을 위해 도착한 마닐라 공항 항상 느끼는 거지만 보딩 트랩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가슴이 탁막혀온다. 4-5월 이지만 이때가 가장 더운 시즌인 이곳 바이어와 차를 기다리는 동안 철조망 너머의 수많은 초롱 초롱한 눈망울의소년 소녀들 "메리 크리스마스"하며 꽃다발 또는 빈손을 내민다. 먼가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데 40도에 가까운 더운 공기보다 날 더 답답하게 만드는데.
아무 생각없이 차에 올라타 EDSA거리 근처 의 샹그릴라 호텔로 향했다. 3박4일의 마지막 밤 바이어가 늘 하던것 처럼 저녁 식사나 하자고 초대를 했다. 그린힐스 근처의 중국집에서 식사를 하고 술한잔 하자고 한다. 상담도 잘되었겠다. 술한잔 마시고 푹자자 생각하고 따라 나선곳 로하스 거리의 룸살롱이다. 대충 즐겨 주는 척하다. 이번 출장 내내 지워지지 않는 어린 눈망울들이 생각나 혼자 먼저 가겠다고 나와 거리를 걸었다.
거리를 걷다 눈에 띠는 카지노 갑자기 어린 눈망울들은 사라지고 갑자기 중국배우 주윤발, 유덕화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구경이나 한번 해볼까. 담배 한대 물고 들어선 그곳은 이제껏 영화를 통해본 내 상상 속의 카지노 보단 너무도 화려해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 정신 없이 돌아가는 머쉰 소리, 떨어지는 코인 소리, 돈을 베팅하고 광기 어린 눈으로 테이블을 향해 소리지르는 이들.
아나운서의 멘트 처럼 장내는 흥분의 도가니 그 자체 이번엔 한층 더 올라가 보자 그런대로 좀 차려 입은 로칼인들이 아래층보다는 차분하게 게임을 한다. 그래도 가끔 터져 나오는 고함들 칩을 수도없이 싸놓고 음식시켜 놓고 먹으면서 하는플레이어도 보인다.
카지노를 한바퀴 돌다보니 한쪽면에 안이 안들여다 보이고 밖에 "VIP ONLY"라는 입간판이 보인다. 안에 들어서려 하니 왠 놈이 막아선다. 씩 한번 웃으며 바낏?(왜?)하고 로칼말을 하니 이넘 깜짝 놀라며 위 아래를 훝더니 길을터준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사람도 그리 많지 않고 분위기가 아까와는 또 다르다. 나오는 음식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게 술이 보인다. 엑스오급 술을 병째 가져다 마시는 배부른 차이니즈들이 눈에 확 들어온다. 옆 구석의 간이 테이불에 앉으니 짧은 치마의 웨이츄이스가 와서 멀 마시겠냐구 한다. 음 좀 당황스럽다. 이것 공짜로 준다는거야 아님 나중에 돈 받는건가. 대충 눈치보니 걍 주는듯하다. 헤네시 한잔과 가벼운 스낵을 가져달고 한후 테이블을 찬찬히 살펴 보았다.
스몰테이블 대햑6-8개에 영화에서 얼핏 본듯한 빅테이블이 4개가 있다. 빅 테이블 2개가 오픈 되었고, 스몰테이블은 블랙잭 다이 2개만 클로즈 된 상태에서 바카라 테이블은 모두 오픈된 상태.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빅테이블의 함성 소리 양 쪽으로 편 먹고 게임하는 줄 알었다. 가까이 다가서 보니 아니나 다를까. 한쪽은 차이니즈 한쪽은 로칼인이다.
상황을 보니 로칼인이 계속 윈한 모양새 차이니즈 아저씨 갑자기 카드를 찢어 버린다. 그 옆에 있던 사람 표정도 마찬가지다. 저쪽 편은 신난다고 건배하고 하이 파이브하고 난리다. 갑자기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처음보는 광경이다. 이게 뭔가? 왜 난리지? 먼 게임이지? 쪽팔리게 물어보기도 뭐하고 대충 눈치로 어느 정도 게임이 들어왔다. 로칼인 갑자기 칩을 교환한다 갑자기 둥그런 칩들이 판때기로 바뀐다. 어 저거 주성치가 대가리로 들이 미는거 아냐 혼잣말로 되뇌이며 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린다. 어 분위기가 이 사람 따라가면 대박이네.
이런 생각을 하는데 10번 승부에 8번은 먹는다. 2번 루스할 때도 배텡이 약할때만 죽는다. 음 한번해봐 말어 주머니에 손이 꼼지락 거린다. 내 몸안에 악마와 천사가 정말 망치들고 싸우는듯하다 가슴이 쿵쿵 거린다. 에이 힌번 장난으로 하는건데 뭐하며 칩 체인지를 하러갔는데 300불 주니 조그만 100불짜리 칩 3개를 주는게 아닌가. 우씨 암튼 교환해 가지고 와 그 로칼인이 가는쪽으로 칩을 올렸다. 갑자기 딜러가 스톱시킨다. 음 왜 그러지? 딜러가 내 돈을 가르킨다.
음 내 돈인디 문제 있냐 물으니 문제 많탄다. 빨리 빼란다. 주위에서도 난리다.
빨리 빼라고 하지만 내가 누군가 못빼하고 개기니까 딜러가 여기는 달러는 500불 미니멈이란다. 음 쪽팔린다.
여기서 돈 가지고 밖으로 나가면 등뒤에서 비웃겠지 하고 생각하니깐 안되겠다 잠시 스톱하고 바로 옆의 체인지 박스로 가려고하니 왠 중국넘이 자기가 바꿔준단다 700불을 마저 바꾸고 에이씨 하면서 간도 크게 천불을 질러 버렸다.이젠 잃어도 쪽팔리진 않겠지.
그런데 갑자기 고민이 생긴다 아무 생각없기로서니 한달 봉급을 털어넣다니. 후회 막급 머리가 막 돌아간다. 잃으면 다신 안온다. 지금 생각해 본다. 딜러가 돈 빼라는 것이 나에게 주신 마지막 선택이 아니었을까하고.
암튼 플레이어가 먹었는지 뱅커가 먹었는진 모르지만 우리편 난리가 났다. 카드 쪼는 넘 나한테 오더니 럭키 보이란다. 음 이 나이에도 보이 소리들으니 좋긴 좋군. 암튼 딜러 나한테 돈을 주는데 이런 조그만거 10개 같는데 큰거 하나 준다. 어릴적 스마일 운동한다고 갈구다니던 뱃지만하네.
찬찬히 살펴보니 유에스천불이라고 써있다. 막 신난다. 음 이번달이 보나스달도 아닌데 출장 수당하고 이거면 4달치 봉급이네 바로 챙겨 틸려구 하니깐 중국넘이 막 부른다 럭키보이 이번엔 어디다 갈거냐구.
우씨 난 저넘 따라가는데 나한테 물으면 난 어카냐 하면서 난 니가 가는 곳이면 무조건 오케이다 그랬더니 씩 쪼게 더니 아까 딴 돈 엎어서 배팅한다. 사람들 난리다. 분위기가 다 엎어가는 분위기.
음 나도 엎어가란 말인가 나 이미 보너스 받었는데 눈치까다 할 수 없이 한번 더 모험 2천불을 밀어 넣었다. 아까와는 심정도 다르다. 더 긴장된다. 시선이 딜러 손에 집중 로칼넘 카드 쪼는데 한 10분은 걸린다. 정말 이러다가 심장마비 걸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상대방이 먼저 카드를 오픈한다 표정도 좋다. 7끌이란다. 우리편 얼굴 본다. 중국넘들 쌈삥쌈삥하면서 난리치구 상대방 넘들은 따오를 연발한다. 이것들 뭐라 하는거야 하면서 그 넘 얼굴보니 똥빛이다. 음 순간적으로 코파카바나의 엔딩송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이 귀에 들린다. 에이 쒸 아까 걍 갈걸 하면서 후회한다. 카드 오픈 2끝이란다. 음 졌네 하고 뒤돌아서려고 하니 카드 한장더준다.
이게 뭐꼬 다시 편나눠서 쌈삥과 따오가 연발된다. 암튼 우리편은 3삥이라고 하니 나도 모르게 나도 외친다 3삥 3삥. 카드 쪼는넘 가로 세로 보더니 3삥이란다. 음 뒤에 물으니 3삥은 3줄을 의미하고 따오는 그림을 의미하는거였다. 헉 3줄이라도 8이면 꽝이쟌여. 단 한번도 기도 안하던 내가 기도한다. 제발 8만 아니길 세로로 양쪽을 훝더니 이넘 카드 집어 던진다.
우리편 난리다 시발 욕이 나온다. 상대편 난리났다. 이 쪽 사람 생각 전혀 안한다. 딜러가 던져진 카드를 오픈한다 허걱 7이다. 우리 9끝이쟌여 이겼쟌여 희비가 교차한다. 로칼넘 뜻모를 웃음을 내게 보낸다. 나도 아무일 없던것 처럼 같이 쪼게주었다. 이제 3천불 올랐으니 난 간다하고 돈 바꾸고 총알 같이 카지노를 나왔다.
3천불 대략 200만원 3달치 봉급이다. 출장 수당도 이번달엔 1500불이니 거의5달치 일을 2시간도 안되는 시간에 해냈다는 뿌듯함에 호텔에 돌아와 누워도 잠이 안온다. 내일은 공항 체크인 일찍하고 듀티프리에서 간만에 식구들을 위해 쇼핑이라도 해야지 하고 잠을 다시 청했다. 이렇게 나의 도박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귀국후 내 생활의 변화는 전혀 없었다. 남들보다 1시간 전 출근 밤10시 11시까지의 야근도 다시 카지노 생각을 떠올리게 하진 않았다. 이렇게 한달이 지난 후 다시 출장이 잡혔다. 이런식으로 나의 카지노 방문은 시작되었다. 무슨 귀신이 달라 붙었나 90년초 중반 까지 거의 갈 때마다 큰돈은 아니지만 적게는 몇백불 많게는 몇만불을 땄다. 당시 국내에 달러 구좌까지 텄다. 하나로는 부족해 가족들 명의로 4개를 더 만들어 항상 달러 구좌엔 5만불 넘게 돈이 예치되 있었다.
주식 투자도 좀하고, 직장 일도 잘 되었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5년 걸려야 하는 대리를 2년만에 파격적으로 또 5년 걸려야 되는 과장도 2년만에 되었다. 월급외에 지급되는 출장 수당만으로도 2달생활하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그 동안 결혼도 했다 여유 돈이 생기니 그동안 신세지던 친구들에게도 베풀 수 있는 아량도 생기었다. 원래 성격 좋고 유순했던 내 주변엔 늘 많은 친구들이 있었는데 경제적 여유가 생기고 남들보다 빠른 진급등으로 더 많은 친구들이 늘 내곁에 함께 했다.
이 때까지도 난 내가 도박에 카지노에 중독 되었단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현지에 3년을 근무하면서도 한달에 한두번 정도 잠시 들려 잠시 즐기고 돈이 생겼다는 사실외에 앞으로 다가올 끔직한 일들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내 주변에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도 말이다.
그 일이 내게도 오리라곤 결혼도 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인과 아이도 생겼다. 세상 모든것이 행복하기만 하다. 안정된 직장, 건강하신 부모님, 사랑스런 내가족들.
재테크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도 행복하지만 더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생겨난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충분히 행복했는데.
많은 돈을 주식에 넣었다. 처음엔 잘되는가 싶더니 서서히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별 걱정은 안했다. 잘 되겠지 하면서 주식이 계속 내리막이다. 아직 까지는 관망하고 있다. 곧 오를거야. 마치 바카라에서 줄 꺽이기 기다리는 심정이었던 듯하다. 잘 아는 은행 대리가 대출 좀 해가란다. 음 내 돈 필요한거 어찌 알았누 하고 놀라면서도, 음 역시 그분이 날 아직 돌보시는군 하면서 아무 생각없이 받았다. 이렇게 계속 물을 길어 날라도 하염없이 곤두박질 치는 주식.
이제 달러 통장밖에 남은게 없다. 은행 대출 받은 돈만 억소리가 난다. 생활도 바뀌었다. 항상 1시간 전에 출근하던 것도 밤에 걱정으로 잠 못 이루어서인지, 간신히 지각을 면할정도다. 상사들이 자주 묻는다. 요즘 걱정이 있냐고. 난 솔직하지 못했다. 대부분이 그러하리라. 아뇨 문제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곤 더 이상 애길 안했다. 이때라도 솔직히 애기하고 도움을 받었었다면.
은행 대출 이자 독촉이 날아 온다. 달러 구좌를 깨야할 판이됐다. 거기에다 2년전에 치과의사 친구에게 서준 3천만원 짜리 연대보증이 잘못되어 나보고 다 갚으란다. 바로 처리안하면 급여 차압을 한다고 엄포를 논다. 누가 치과의사가 부도가 나리라 생각이나 했겠는가? 아 이 일을 어떻해 하나 대출 이자도 못내서 일시 상환하라고 은행들 마다 난리인데. 집에 사실대로 애기하고 도움을 받을까? 아니면 대충 정리하는데 까진 해보고 그때가서 다시 생각해볼까? 이런 생각에 일도 눈에 안들어 온다.
일단 대출 이자나 갚고 기한 연장하고 주식깡통 정리한다니깐 그거 먼저 해결하자 하면서 그동안 들어논 개인연금, 보험, 정기적금 닥치는대로 정리를 했다. 정리된건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이제 한 숨 돌리려나 했더니, 지금도 욕나오는 IMF가 꽝터졌다.
더 이상 초이스가 없다. 매일 사무실로 걸려오는 수십통의 은행의 상환 독촉에 이젠 직원들이 날 보는 눈치가 느껴진다. 사무실에 걸려오는 잔화 벨소리가 두렵다. 능력있는 과장에서 갑자기 문제아가 된 느낌이다.
궁리 끝에 드디어 카지노가 떠 오른다. 지난 10년간 연승 행진한 그 곳 바로 거기다. 이렇게 생각하니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지 하고 날 원망까지 해본다. 얼마나 어리석은 놈이었던가 나는. 달러 통장을 정리하니 대략 7만불이 된다. 800원 하던 환율이 거의 1200원이다. 은행 직원은 한달 정도 더 버티면 1400까지 갈텐데 좀만 기둘리라고 한다. 어차피 달러로 찾는거고 단 하루도 지옥같었던 나는 그 돈을 몽땅 찾는다. 찾어서 조금만이라도 빛 정리를 했었으면.
외환관리법이 있어서 만불이상은 가지고 나가지도 못하는데 혼자 머리를 굴려본다. 대략 이제까지의 나의 시드 머니는 3천에서 5천이었다. 물론 2천이상 체인지 해본적도 없이 100% 윈했으니 2만불 정도면 한번 갈때 마다 최소 5천은 되니까. 두세번 갈때마다 한건 정도씩은 해결할 수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어떻해 나가느냐다. 암튼 카지노로 해결 방법을 찾은 나는 출장 기회를 잡어야만 했다. 다시 회사 생활이 활기차진다.
IMF로 달러가 가치가 생기니 회사에서도 수출에 더 집중을 한다. 바이어들과 매일 전화로 컨텍하고 건수 만들기에 밤낮이 없다. 출장 스케줄이 나왔다. 이 번 한달 동안 필리핀 출장 2번, 미국 출장1번 결재를 올렸더니 사장, 전무 모두 기대한다고 잘 해 보라고한다.
음 절라 미안한 맘도 있었지만 한편으로 그래 일도 열심히 하면 되지 뭐 이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니 맘도 편하다. 나없는 동안 은행에서 회사로 또 회사에 연락 안되면 집으로 전화갈 지 모르니 각 은행 마다 대부계 카드계 담당들에게 전화를 때렸다. 나 출장인데 갔다오면 일부는 처리할테니 연락하지 말라고 부탁 또 부탁을 했다. 인생 새옹지마라더니 엊그제 돈 대출해 준다고 난리쳤던거 같은데.
공항에 도착하니 이제 출국시 세관 검사가 걸린다. 아 씨 2만불을 어케 가지고 나가지. 머리를 굴리다 화장실로가서 구두에 한짝씩에 5천불씩 깔구, 나머지 만여불은 걍 지갑에 넣었다. 다행히 검색대 무사 통과.
이제 맘이 편하다. 모든게 해결된 듯 맘 편히 비행기에서 잠을잤다. 아침 8시 비행기를 탔으니 오후에 열심히 일을 했다. 3박4일이니 최대한 일을 빨리 끝마쳐야 시간이 남는다고 생각하니 정말 정신없이 일했다. 저녁 식사 접대는 전부 켄슬해버렸다. 그 시간에 카지노에서 돈 벌 생각에.
첫날부터 4천불이 나갔다. 밤새 했는데. 5시가 되서 자리에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또 일을 해야하니까. 잠이 밀려든다. 이동중에 로칼 호스트와 보통 애기하면서 이동하지만 안면까구 걍잔다. 코까지 골아가면서.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고 밤이 왔다. 몸은 천근 만근이지만 다시 카지노로 향한다. 오늘도 6천불을 잃었다. 잃을때는 만불이 내 4달치 수입이라는 사실은 생각도 안한다. 잠 한숨 못쉬고 다시 일을 한다. 체력의 한계인가 상담중에 졸기도 한다. 아무튼 이번 출장에 약 30만불의 오더를 챙겼다. 할 일은 한셈이다.
마지막 밤이니 오늘은 빼도 박도 못하고 저녁 접대를 받어야한다. 몸이 안좋다는 핑계로 저녁만 간단히 하자고 하고 카지노로 향한다. 저녁 9시 내일 12시 비행기니 약 12시간의 시간이 있다. 이젠일도 잊고 여기에 전력 투구하리라 다짐하며 카지노에 들어섰다. 오늘은 시간이 있으니 좀 차분히 하리라. 몇년 동안의 카지노 승리 덕분에 왠만한 딜러는 다 안다. 이들이 내게 붙여준 닉네임까지 있을 정도다. 내 이름은 칼 KAL 이다. 코리안 에어가 스폰서 해주는 도박사아니냐 고 딜러들이 우스개로 불렀던 닉이 이제는 공식화 되었다. 승부를 위해서는 오늘은 달러 게임을 해야 하는데.
만불 가지고는 미니멈 10번 베팅밖엔 못한다. 이틀에 걸쳐 잃었던 만불이 너무도 아쉽다. 일단 밖에서 만불 정도를 올려 2만불로 VIP에서 승부를 보리라 작심하고, 마바리판에서 (삥바리라고도 하는 베팅 금액 10-50만원 맥스인 판을 의미) 약8시간의 사투끝에 만불 정도 되는 로칼 칩을 얻었다. 아 시간이 4시간 정도 남았는데 서두르자.
VIP안이 오늘은 썰렁하다. 빅 테이블에 첨 보는 중국넘 하나만 플레이 하고 전부 스몰 테이블에 있다. 중국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기록지를 살핀다. 그림 황이다. 언제 부터인가 난 이미 이 카지노의 다른 사람들에게 바카라 고수로 알려져있다. 내가 게임을 하는 동안엔 늘 뒤에 라이더들과 카지노거지 (비하하려는 뜻은 아닙니다. 당시 실제로 그렇게 불렀기 때문에 이렇게 사용하니 이해 바랍니다)들이 대여섯명씩 달라 붙어있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도 안보이고 그 녀석과 나 단 둘이다. 보통 빅 테이블 매치는 편싸움이 되기 일 수이다. 왜냐하면 서로 카드를 쪼려고하는 경향이 강하고 상대방이 잃어야 내가 딴다는 착각 때문에 딜러와 싸운다는 걸 잊고 이런 경우엔 둘 중 하나가 망하기 쉽상이다. 나 그 녀석에게 카드 리셋하고 다시 하자고 그림 황이라고 하니 이녀석 오케이 하고 셔플 시킨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니 이 녀석 내 반대로 슬슬 틴다. 아 이럼 안되는데 하면서 다른 테이블이 없기에 나 소신껏 간다. 가끔 같은 방향으로도 가고 암튼 이런 썰렁한 겜이다 보니 시간은 없는데 돈이 안오른다. 점점 초조해진다. 아직 카지노 귀신이 돌보고 있는가 7천불 정도가 올랐다. 시간을 보니 이미 10시 절라 서둘러야 한다. 간신히 도착해서 비행기에 오르자 아무 생각없이 잠에든다. 기내식이고 뭐고 필요없다. 눈을 뜨니 김포공항이다. 공항 화장실서 세수를 하고 정신차리고 거울을 통해 내 얼굴을 보니 피골이 상접해있고 동공이 아직 풀려있다. 옷에선 담배에 찌들은 메퀘한 냄새 헛구역질이 올라온다. 공항밖 찬바람을 맞으니 갑자기 현기증이 난다. 이제까지 느껴본적이 없는 느낌 .
즐기려고 간 카지노가 아니고 돈을 위해 간 카지노다. 이제 직장인 이전에 도박꾼이 된 것이다. 7천불로 일단 각 카드부터 정리했다. 그리 오래된 연체도 없었고 돌려막기 덕택이지만. 한숨은 돌렸다. 원전 중 만불을 더 바꿔서 대출이자도 조금씩은 정리가 됐다. 사무실로 오는 전화도 줄었다. 다음 출장들에서도 많이는 아니지만 1-2천 불은 가지고 들어 올 수도 있었다. 무역 실적도 좋아서 회사에서 표창도 받고, 새로운 업무들도 인계받었다. 하지만 내 머리속엔 어떻하든 카지노에 가서빨리 돈을 따서 빛정리를 하고 다시 시작하고픈 맘 뿐이었다.
본질적으로 나의 채무들은 약간의 시간을 얻었다 뿐이지 해결된 것은 실제 거의 없었다. 출장 잡는 것도 정도 껏이지 더 이상 나갈 수도 없다. 또 다시 앞이 꽉 막혀 버린 것이다. 다시 매일 매일 머리 속으로 묘안을 짜낸다. 기가 막힌 수가 떠 올랐다. 멀쩡한 와이프를 중환자로 만들어 버렸다. 한 3-4달 정도 토요일 근무가 불가능하다고 결제를 올려 재가를 받았다. 완벽을 기한다고 집 전화번호까지 회사에 알리지 않고 바꿨다. 드디어 거짓말이 시작된 것이다. 한번이라도 거짓말을 해 본 사람은 알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거의 뽀롱이 난다는 사실을. 암튼 난 완벽하게 처리했다.
이 기간 동안 매주 금요일 저녁4시만 되면 김포로 날라갔다. 그리고 돌아오는 것은 일요일 비행기를 예약했다. 처음엔 호텔룸도 잡았다. 하지만 잘 알다시피 시간 재 놓고 플레이 하 는 놈이 호텔방은 필요가 없었다. 짐 풀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일정으로 나는 매주 약 34시간 정도 플레이를 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라 과연 정상적으로 플레이를 할 수있었을 지를.
매번 시계가 일요일 9시를 가르칠 때, 난 한시간의 여유 밖에 없었음으로 풀 베팅을 시작했다. 따면 5천불에서 만불, 지면 2만불 이었다. 처음에는 하지만 한번 질 때마다 내 맘은 더욱 초조해졌다. 다음엔 3만불 그 다음엔 5만불까지도 가지고 나갔다. 이 돈이 어떻해 생겼겠는가. 이미 나의 한도는 넘어섰다. 그럴수록 더 절실했다. 그때 생각으로는 카지노만이 내가 다시 원점 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친구들에게 돈을 돌렸다. 대략 8천 정도다. 어마어마한 돈이다. 하지만 나에게 미소 짓던 카지노 귀신은 이제 비웃음만을 보낼 뿐이다. 1-2만불이 올라도 난 스톱을 할 수가 없었다. 내겐 몇개의 시한폭탄이 이미 카운트 다운에 들어 갔음으로.
이 중 하나가 터지면 연쇄폭발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2만불은 돈 같지도 않다. 가끔 5만불을 베팅하기도 했다. 내가 재벌2세도 아니면서 카지노 주위에선 날 서서히 돈질하는 미틴넘 으로 본다. 얼마를 잃었는지 이젠 생각도 안난다. 계산하는 것 자체가 싫다. 이제 더 이상 돈을 빌릴 때도 없다. 온갖 잔머리를 굴려도 돈 구할때가 없다. 아 천불만 있어도 날라갈텐데.
차도 이미 팔았다. 집도 팔고 전세로 옮겼다. 또 옮기자고 하면 모든게 들통날 듯하다. 내가 왜 이 지경까지 왔는가 아무도 모르게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아닌가 아직 누구도 내가 카지노에 다니는 사실을 모른다. 혼자 매일 술을 마시며 괴로워하지만 앞이 깜깜하다. 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걸 지워 버리고만 싶다. 하지만 그럴수 없지 않은가. 걍 눈물이 난다.
대학 동창들과 10년동안 모았던 곗돈이 생각났다. 이거 쓰고 따서 바로 챙겨 넣자 이렇게 생각하고 약 4천만원의 돈을 준비했다. 단 한번도 이거 잃으면 어떻해 될까 생각도 안해보고 결과는 참담했다. 모든 걸 날렸다. 아무리 이겨도 일어설 수 없는 나는 이미 처음부터 패자였던 것이다. 친구들의 돈은 어떻하든 다시 채워 넣었어야했다.
방법은 한가지다. 퇴직금 그리고 솔직한 고백이었다. 회사에 퇴직금 가정산을 부탁했다. 약 3천 정도 나온다. 아무일이 없는 상태에서였다면 엄청 큰돈이지만 내겐 칩 몇개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천 정도가 부족하다. 다 잃어도 친구들은 잃을 수 없다. 난 또 한번 무모한 도전을 선택했다. 3천으로 천만 올려서 오자고 이미 나온 답이다. 이젠 정말 개털이다. 남은건 전세금 8천이다. 아 지금 스톱해도 되는데 지금 스톱해도 늦지 않었어~~~~~ 현재의 때늦은 후회다 이 8천 역시 카지노 칩 박스에 고스라니 헌금했다.
모든걸 잃고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보자고 하신다. 그것도 집 밖에서 서류를 한뭉치 꺼내드신다. 은행 빛들이다. 카드 빛까지 합치니 거의 3억이 넘는다. 어찌 된 일이냐고 묻는다. 고개만 숙이고 눈물만 흘렸다. 여자가 생겼냐고 했다. 아니라고 말했다. 그럼 도박이겠군 하신다. 아무말을 못했다. 이 빛을 어떻해야 할까?하고 묻는다.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이제껏 살아오며 단 한번도 걱정을 끼친 적이 없었던 나였기에 실망감과 당혹감은 얼마나 크셨을까 생각해본다. 이게 전부냐? 하고 물으신다. 헉 해결해 주실라나? 되먹지 않은 기대감을 갖고 "눼"하고 다시 한번 거짓말을 했다. 그거 외에도 몇개더 그리고 친구들 빛과 곗돈 합치면 2억 정도는 더 남었는데.
차마 그 이야길 못한다. 아버진 아무 말 없이 들어가 식구들에게 티내지 말고 씻구 자라고 한다. 몇주 후 아버지는 은행 빛을 정리를 하셨다. 남에게 1원 한푼 구걸 하지 않던 분이 60년 넘은 죽마고우에게 빛을 내셨던 것이다. 난 또 하나의 고민이 생겼다. 아직 말 못한 빛들은 어떻해하나.
. 친구들에게 이실직고를 했다. 카지노 애기도 했다. 죽을 죄를 졌다고 사과했다. 모두들 너무나 놀라했다. 어떻해 니가 카지노를 하는 그런 맘으로 안타까워 했다. 돈보다는 날 더 걱정해 주었다. 몇 몇 친구가 나머지 은행빛까지 처리를 해주었다. 이미 튼 금액을 연체한터라 황색으로 분류 되 이젠 카드고 뭐고 쓸 수 없다. 하지만 난 정말 복 받은 놈이구나. 수도 없이 감사하고 감사하며 다시는 이런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말자고 다짐 또 다짐했다.
직장을 옮겼다. 남들 보다 월등한 급여를 받았지만 그 정도로는 다시 재기할 수 없단 판단이 섰기에 아쉬움없이 사표를 제출했다. 끝까지 날 말리는 사장님 전무님에게 그간의 애기를 다했다. 정말 죄송하다고 무릎 꿇어 사과를 드렸다. 규정에도 없는 전별금을 주셨다. 어려운 일 있으면 꼭 연락하라고 하며 보내주셨다. 새 직장은 연봉 계약을 하고 들어갔다. 일부러 인센티브 조항을 만들어 연봉은 평범했지만 실적급을 확실히 하고 들어갔다. 생소한 분야였지만 이동통신 관련 부품 관련 회사라 뭔가 미래가 보여서 주저 하지 않았다. 이렇게 나의 2번째 직장 생활이 시작되고 모든것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듯 보였다.
과연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일을 시작한지 6개월 후에 는 난 어느 정도 이 바닥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세일즈맨이 되있었다. 처음 6개월 생소한 전자 관련 용어와 기본 지식들은 하루도 빼지 않고 새벽4시까지 공부한 덕택인 지 전자 공학을 전공한 동료 직원들이 내게 물을 정도로 발전했다.
지난 10년간 내가 저지른 실수에 대한 생각과 후회할 시간도 없이 그렇게 정신 없이 일했다 . 하루에 대전 구미 창원을 도는건 기본 코스였다. 최소 7-8개의 연구소들과 업체를 돌며 온머 리가 희어지는 것도 모를 정도로 전력을 다했다. 외국 바이어들과만 거래하다 국내 거래를 하다보니 아니꼬운 일도 수도 없이 많었다. 몇 번을 때려 치려고 했지만 이를 악물고 참었다.
1년이 지나 연말 인센티브를 받고 나니 거의 6천만원 정도를 벌었다. 이제까지 받은 모든 돈들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저축을 했기에 연말에 가까운 친척과 친구들의 채무를 조금 해결 할 수 있었다. 정말 너무 기뻤다. 하나 하나 해결해 나가자. 다음 해에도 난 변하지 않고 열심히 잘해나갔다. 단 한순간도 카지노에 대한 생각이 떠 오르지 않았다. 일을 하는 즐거움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으로 힘든 일이었지만 하루 하루가 즐거웠다.
프랑스 본사에서도 연봉을 더 많이 책정했다. 인센티브 조건도 만족할 만했다. 페이저 시대가 완전히 가고 셀루라와 PCS폰이 뜨기 시작했다. 이제껏 뿌려 놓은 발품이 효과를 발휘한다. 앉아서 오더를 받을 정도다. 이럴때 일수록 사람들을 더 잘 챙겨야 한다. 더 성실하게 고객들을 대했다. 막 시작하는 벤처.
모두들 외면했지만, 난 이들에게도 최선을 다해 영업을 했다. 내 직속으로 연봉 4천짜리 영업 직원 4명을 둘 정도가 되었다. 발이 10개라도 혼자 처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을 두면서 실적은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난 이제 가끔 얼굴 보이고 애로사항만 둘어 주면서 영업 보다는 관리에 더 치중하는 위치가 되었다. 프랑스, 동유럽에 자주 드나들었다. 그 해 고한에 내국인 카지노가 생긴 것이다. 카지노가 생겼다는 소리에도 난 커다란 동요도 없었다. 나랑은 다시는 상관 없는 곳이야. 그 해 연말이 되었다. 인센티브를 계산해 보니 정말 놀랐다. 순수 인센티브만 1억이 넘어 거의 2억에 가까운 돈이다. 아 내가 해낸 것이다. 그 해 종무식, 여의도 모 빌딩 스카이 라운지에서 직원들과 파티를 하고 다음 해 연봉 계약도 마쳤다. 눈발이 조금씩 날리는데.
이것이 카지노 귀신의 호출이었다. 지금 누가 "왜?"냐고 물으면 할말이 없다. 종무식 후 갑자기 고한의 강원랜드 오픈 뉴스가 떠오르고 일월 연휴는 거기서 보내야지 란 결심을 하고, 바로 차를 고한으로 몰았다. 처음 가 보는 길이라 엄청 헤멨다. 주천으로 들어가 고갯길을 넘고 물어 물어 카지노를 향했다. 이제껏 2년의 생활 그리고 10년간의 직장 생활을 카지노로 인해 버려야 했었던 일, 아버지의 슬픔 친구들의 도움이 모든 걸 난 단 몇초만에 다 지우고 그렇게 고한을 향했다. 2박 3일 일정으로.
카지노에 들어가 보고 놀랐다. 그 조그만 규모에도 놀랐지만 발 디딜 틈도 없이 많은 인간들에게 놀랐다. 수백번을 카지노에 가보았어도 이렇게 북실 되는건 처음이다. 그렇게 인간많은 마카오의 리스보아도 이렇지는 않았다. 위 층을 올라 갈라하니 뭐가 복잡하다.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 망설이다 5백 정도 바꿔 바카라 뒷전에 섰다. 맥스 50인데도 갈 구멍이 없다.
가끔 마귀같이 된장질 하는 블랙홀 만 비워있다. 하여튼 뒷 전에 서서 하는 둥 마는 둥 500을날렸다. 눈에 꼭지가 돌기 시작하고 보이는게 없다. 다시 천만원을 찾아서 자리를 구했다. 당시만 해도 초창기여서 그랬는지 다들 돈이 넘쳐났다. 한 두 슈에 일이천 잃은 사람은 부지기수였다.
그래도 계속 돈을 찾어 플레이 하느라 자리 사는것도 장난이 아니었다. 몇시간을 개기다 보니 운좋게 자리를 잡았다. 이미 몸은 파김치가 되어 있었지만 암튼 이날 난 3천 정도를 날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텔에서 잠을 자는데 잠도 안온다. 아버지 그리고 가족 생각 회사 생각 단 한번도 나지 않았다. 오직 돈과 칩만 생각이 났을 뿐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회사에 시무식이 있는 날이다. 난 아직도 고한이다. 전화를 때려 외국이라고 뻥친다. 개인적인 일로 일주일 정도 있다가 들어가니 양해해 달라고 거짓말을 하고, 집에는 회사일로 해외 출장 나왔다고 뻥을 쳤다. 약 20일 다시 모든 걸 날렸다.
차도 잡혔다. 주머니엔 만원짜리 서너장. 카드 지갑엔 든 10여장의 카드는 맥스로 다긁었다. 현금 서비스도.
20일 사이에 몇 억을 갖다 바친 것이다. 몇 일 게임하면서 얼굴을 튼 인간들과 고한으로 내려와 여관방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돈만들 궁리를 해본다. 몇일 간 수없는 거짓말로 다시 몇 천을 마련 해서 올라가지만 내려 올 땐 빈털털이로 꽤재재한 모습으로 내려왔다.
2주 동안 면도도 안해서 완전히 도적같은 얼굴이 되어있었다. 내가 카지노 귀신이 된 것이다. 직장과 집에 연락을 안한지도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오늘도 난 달랑 입장권만 산 채로 카지노에 들어가서 빈 기계 앞애 앉았다. 불과 몇일 전에 기계에서 이천육백 잭팟을 터트렸었는데도 지금은 거지다. 구석에 쭈그려 앉어 있는데 낯익은 얼굴이보인다.
난 고개를 숙이고 황급히 반대 편으로 뛰었다. 와이프였다. 끝까지 날 쫒아왔다. 밖에 아버지가 계신다고 한다. 난 눈물을 흘렸다. 이 눈물을 흘린 지 얼마나 되었다고. 와이프가 내게 말한다. 잘 될거라고. 다시 올라가서 시작하자고 한다. 날 탓하지 않는단다. 잘못이 있다면 자기에게 있다고.
밖에 나오니 아버지가 계신다. 이번에도 아무말 안하신다. 얼굴을 보더니 말없이 눈물만 흘리고 계신다. 올라가자고 하시지만 이미 차도 맡긴 상태인데 말씀 드렸다. 차를 찾아서 서울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내 얼굴을 보고 쓰러지신다. 형은 죽일 놈이라고 손목을 잘러 버리겠다고 한다. 벌써 2번째다. 지난번 일로 형은 장가도 가지 않고 벌어논 돈 몇억을 내 빛 잔치하는데 홀라당 써 버렸으니 그럴만도 했다. 부쩍 큰 아들 녀석은 뭔 일이 있는지 감을 잡었는지 밖에서 조용히 서서 울기만 한다. 난 다시 굳게 입술을 깨물으며 다시는 다시는 카지노를 안한다고 굳게 결심했다.
"난 도박중독자가 아니야" 단지 모든 걸 빨리 끝내고 싶었고 그래서 빨리 정상적으로 살아보려고 이 방법을 택했던 잘못이 있을 뿐이지 도박이 좋아서 한건 아니라고 변명하면서 거의 한달간의 무단 결근으로 회사는 자동 정리되어 있었다. 내가 담당하던 100여개의 업체들은 내 직속 부하들이 고스란히 인계했던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도 어쩌면 잘 되었던 것이다. 인센티브 조항이 늘 거슬렸는데 이 기회에 날 자를 수 있었기에.
내가 가진 것만 날렸어도 그나마 해결책이 보였는데 카드 빛과 채무들이 다시 앞을 막막하게 했지만 아직까지도 날 도와주려는 사람들 때문에 신용 불량자가 되지 않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약 2주 정도 많이 방황했다. 다시는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집에 쳐 박혀 아무 전화도 안받았다. 그저 모든걸 지우고 싶었고 이게 꿈이었으면 하고 바랬다. 정말 꿈이었으면
이제 다시 직장에 나가는 아내가 저녁에 들어오면 내 눈치를 많이 살핀다. 나 모르게 지갑에 몇십만워을 넣어두고 가끔 바람이라도 쐬라고 한다. 나 아니었으면 호강 할텐데 남편 잘 못 만나 고생하는구나 생각하니 너무도 미안하다. 마음을 추스리고 회사를 알아 보았다. 나이가 관건이었지만 내 경력 정도면 어렵진않으리라.
자본금 100억이 넘는 외국계 IT회사에 부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난 이렇게 제 3의 인생을 다시 살게 되었다. 이 모든게 가족의 사랑이 있었기에가능한 일이었다. 죽자 사자 일을 했다. 월급도 받으면 10만원을 제외하고는 어머니께 드렸다. 우리 가족의 생활은 와이프의 봉급만으로도 충분했기에, 어머니는 매달 내 빛을 정리해나가셨다.
이렇게 2-3년을 일했다. 빛도 정리가 다 되었다. 직급도 이사가 되었다. 비록 간신히 빛쟁이만 모면했을 뿐이었지만 맘도 생활도 너무 좋았다. 아주 절제된 생활은 아니었지만 남들 처럼 샛길로 빠지진 않았다. 직장 동료들과 친구들과 자주 만나 술을 마시는 것이 유일한 나의 탈선이었다.
내 전력을 아는 친구들은 술좌석에서 마다 나의 카지노 경험담을 묻곤했다. 그런 경험 후에도 이런 모습으로 돌아온 나에게 진심으로 찬사를 보냈다. 이사가 되어 연봉도 억대가 되었다. 하지만 연봉과 비례하여 스트레스 역시 올라만 갔다. 재계약과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로 궤양이 돗았다.
목이 돌아가지 않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했다. 이런 압박감은 급속도로 나의 건강을 해치기 시작했다. 친한 친구 녀석이 동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일단 1억짜리 법인으로 일을 시작하자고 한다. 나름대로 사업성 검토를 해보았더니 승산이있는 듯했다. 하루 하루가 너무 큰 스트레스였기에 과감하게 자리를 내놓고 나왔다. 조그만 사무실을 하나 얻어 시작한 사업은 6개월 정도 지나니 투자금을 회수하고, 월급쟁이 때보다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 수입이 오르기 시작했다.
업종도 다양화하고 본격적으로 일을 벌려 1년후에는 증자도 하고, 투자도 받아서 다른회사를 인수했다. 회사 2개를 운영하는 대표가 된것이다. 비록 크지만 않지만 자본금 5억과 10억짜리회사는 순풍에 돗 단듯 잘 나갔다. 직원들도 불과 1년만에 70여명이다. 처음 시작할 때 5명에서 초단시간에 발전을 한것이다. 마치 타오르는 불에 휘발유를 부은듯이 승승장구였다.
대략 년간 수익 400억 정도 되는 프로젝트가 눈에 들어왔다. 인맥과 적당한 기름칠이면 성공할 듯했다. 기름칠을 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모았다. 이제껏 축적해 놓은 자금과 이 사업을 아는 친한 친구들에게 투자를 받고 이사들과 상의해서 회사의 다른 자금도 유용 대략 수억의 금액을 모아 기름칠을 하기 시작했다.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하지만 처음 부터 뭔가가 이상했다. 처음엔 브로커의 배달 사고가 생겼다. 다행히 바로 발견하여 손실은 없었다. 다른 브로커를 구해야만 했다. 온갖 백을 동원해서 연결된 브로커, 그를 통해 작업에 착수했다. 주사위는 던져 졌지만 주사위의 결과가 1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사기 아닌 사기다. 회사의 모든 걸 던졌는데 앞으로 1년을 더 버텨야 한다니.
당장 운영비에 압박이 들어온다. 이사회의만 하면 싸움이 일어나기 일수다. 이렇게 몇개월을 버텨냈다. 사무실도 층으로 임대해서 쓰던 것을 100평 짜리로 옮겼고 직원들도 10여명으로 줄였다. 최소의 인원만 남기고 움츠리기에 나선 것이다. 뭔가가 이상해 그동안 브로커의 뒷조사를 했다. 혹시나 했건만 사기였다. 이제 희망도 사라져 버린것이다.
하지만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브로커에 들어간 자금 회수를 위해, 그의 회사를 찾어가 공갈 협박 회유를 수차례했다. 다른 프로젝트들도 검토했다. 집에 못 들어가는 날이 더 많아졌다. 회사에서 밤을 새우는게 다반사다. 이사들을 동원해 자금 확보에 나섰지만 내생각 처럼 뛰어주진 않았다.
투자자들에게 배당을 못 준지도 몇달이다. 사무실 임대료도 몇달 밀렸다. 직원들 봉급만은 어떻해하든 챙기려고 매달 카드에서 현금 서비스를 받아 주었다. 하지만 브로커의 상환금은 한달에 몇 천씩 들어오고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 통보는 다시 한번 날 막다른 절벽으로 밀어 넣었다. 모두가 돌아간 사무실에 혼자 앉아서 법인 통장을 정리해 보았다.
약 칠천 정도가 남아있다. 이 역시 월말이면 모두 지출해야 할 자금이다. 결국 다시 난 깡통 찬 셈이다. 급한 상환요구 들어온 것 일억과 임대료와 기타 공과금 밀린것 다는 아니더라도 반 정도 정리하려면 오천 정도 필요하다. 이렇게 생각하니 방법은 하나다. 카지노다.
어차피 앉어서 망하나 가서 잃으나 매한가지 라고 생각하고 카지노행을 결심한다. 마침 사북에 빅 카지노가 생겼다니 지난번 보단 낫겠지하고 밤세 차를 몰고 갔다. 새벽에 도착 3-4시간 게임에 몇 백을 챙겼다. 바로 차를 몰고 다시 사무실로 출근했다. 오후에 다시 카지노를 향했다. 또 몇백을 이겼다. 다시 차를 끌고 서울로 올라왔다. 이러기를 한달이다.
질 때도 있었지만 이기는 경우가 더 많았다. 덕분에 임대료와 공과금 약간은 처리할 수있었다. 월말 결제에 필요했던 돈도 그대로 지급 되었다. 그 사이에 수금도 되고해서 또 한달은 넘길수가 있었다. 난 철인이 아니었다.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도저히 차를 가지고 갈 수가 없었다. 강원랜드 리무진을 오후에 사무실 앞에 대기시키고 회사 일 정리되는대로 바로 강원랜드로 달렸다.
이렇게 수개월이 지났다. 브로커 자금은 아직 4분의1도 안됐다. 투자자에게는 매일 매일 이 핑계 저 핑계로 상환을 미뤄 나갔다. 직원들 아무도 모른다 내가 뭘 하는지 그들에겐 월급 안 밀리고 나오는게 관심일 뿐이다.
이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회사 자금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어차피 문 닫어도 내가 대표이기에 자기들은 책임을 면할 수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앞에서만 열심이다. 드디어 일이 터졌다. 결국 난 수술대 위로 올라 가야만 했다. 수술을 받기 전 그 통증에도 난 의사에게 수술을 마룰수 없냐고 물었다. 지금 수술받으면 모든게 끝이라고 말하며.
장이 터져 복막염까지 갈 수 있다고 바로 칼을 댔다. 6시간에 걸친 대수술이었다. 의사는 약 4-50일 입원을 명했지만 난 그럴수가 없었다. 내가 호스를 코에 박고 그리고 소변 주머니를 달고 다닌 그 순간에도 투자자들의 독촉은 피할 수가 없었다.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0여일만에 퇴원을 했다.
사무실로 돌아가 통장을 보니 5천 정도 되었다. 투자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걸로 시간을 연기해 보려했지만 전액 상환해 달란다. 다시 리무진을 불러 카지노로 향했다. 배에 아직까지도 실밥 자리가 아물지 않었는데도 결국 이러기를 수차례 난 다시 모든 걸 날렸다. 회사에 연락도 안했다. 사북에 1달 정도 머물렀다. 게임을 하진 않았다.
게임을 하진 않았다. 돈도 없었지만 어떻해 일을 처리할 수 있을지 생각하느라 한달을 보냈다. 회사와 연락을 했다. 이사들 나보고 공금을 유용했다고 한다. 빨리 채워 넣으라고 한다. 주식회사니 유용은 유용이군. 하며 곧 채우겠다고 애기하고 난 유랑길에 올랐다. 여기 저기를 떠 돌아 다니며 노가다도 하고 배달도 했다. 재워주고 먹여주고 약간의 돈만 되는 일이라면 범죄가 아닌건 뭐든 했다. 집과도 회사와도 연락을 끊었다. 나 스스로 해결의 방법을 없애고 도피 행각을 한 것이다.
거의 5개월을 헤메던 올 1월 불심 검문을 당했다. 이미 기소가 되었지만 찾지 못해서 기소중지자가 되 있었던 것이었다. 설마했는데 회사 이사들이 날 고소한 것이었다. 유치장에 일주일 지내며 조사를 받았다. 모든 사실을 밝혔다.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란 수사관의 질책과 동정도 날 구할 수는 없었다. 유일한 방법은 합의였다. 부친과 와이프가 경찰의 연락을 받고 유치장에 왔다. 플라스틱 유리창으로 본 그들의 얼굴은 나보다 더 초라해 보였다. 눈물도 흘릴 수가 없었다. 아 내가 왜 이 지경에 까지 왔단 말인가. 부친은 합의를 하려면 집을 내 놓아야 한다고 했다.
난 아버지께 제가 죄를 달게 받겠습니다 하고 그 집은 아버지 재산이니 제가 죽어도 손을 댈 수 없다고 했다. 아버지 역시 나머지 식구들은 살아야 하지 않냐고. . . . .
애비가 못나서 해결해 주지 못하니 맘 굳게 먹으라고 말하시고 가셨다. 등을 돌리고 나가시는 아버지에게 난 속으로 아버지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수도 없이 되뇌였다. 유치장 담당 형사가 아버지가 가시면서 돈 30만원과 사식을 넣었다고 한다. 스스로 내 자신을 돌로 쳐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이라고 자책해본다. 구치소로 옮겨 약 3개월간 있으면서 수없는 참회의 반성을 했다.
고소인들에게 매일 편지를 썼다. 가진것이 없었지만 나의 지나온 생활을 아는 이들이라 결국 돈을 포기하고 합의를 해주었다. 집행유예의 선고를 받고 난 다시 돌아왔다. 이제 내겐 남은 것은 가족과 빛 그리고 전과자라는 오명 밖에는 없다. 이미 2개의 회사는 경영권이 넘어갔다. 하지만 이젠 절대 잊지 않으리라. 같은 실수를 다시는 하지 않으리라. 한번에 모든 걸 얻겠다는 일확천금의 꿈은 꾸지 않으리라. 내가 땀 흘려 벌지 않은것은 결코 내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곱 씹으며 살아가리라. 모든것을 잃고 두번이나 다시 재기하지 않았던가? 이제 시작이다. 난 다시 태어났다. 카지노가 없는 세상에 도박이 없는 세상에.
인간이기에 실수를 하였습니다. 인간이기에 용서를 받었습니다. 인간이기에 모진 인생 다시 한번 멋지게 살아 보렵니다. 지금 절망에 빠져 길은 카지노 하나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문은 절대 아닙니다. 더 깊이 빠지기 전에 나오십시요. 내일이면 다음 번에는 하며 미련을 갖지 마십시요. 끝을 못내는 당신에게는 저와 같은 미래 밖엔 없습니다. 당신의 인생은 아직 깁니다. 더 이상 오점을 만들지마시고 과감하게 나오십시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수 있습니다. 저와 같이 이 멋진 세상을 다시 한번 건강하게 살아 갑시다. 비록 가진 건 없지만 전 행복합니다.
제겐 아직 절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 모두가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50여억을 날린 경찰 서장도 지금 5만원을 잃은 누군가도 다시 시작 할 수 있습니다. 바른 길을 찾어서 빛이 있는 그곳으로 ~~